3의 방식
우리는 정해진 삶의 방식 따위는 없다고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그걸 믿지는 않는다. 은연중에 삶에는 정답이 있고, 적어도 옳다고 통용되는 길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모든 것을 정석대로 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메뉴얼이 있어야 하고, 자신이 메뉴얼 대로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보며 불안해 한다. 이런 습성 때문에 한국인들은 새로운 기술을 빨리 익히고 도입한다. 새로운 문화의 형성이 쉽고 빠르다. 하지만 그렇기에 틀에서 벗어난, 메뉴얼에 적혀있지 않거나, 메뉴얼이 없는 것들은 상상하지 못한다.
한국에선 정해진 삶의 방식은 있다. 우리가 믿는 올바른 삶의 방식은 숫자로 셀 수 있을 만큼 제한적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전체의 삶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정석의 메뉴얼을 갖고 있다. 예를들면 대학은 어딜 가야하고, 결혼은 언제 해야 하고 같은 큰 틀에서부터, 어느 학과를 나오면 무슨 자격증을 따야하고, 엠티에선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하고, 웨딩업체는 어떻게 찾아야 하고,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고… 등등. 우리나라는 WHAT에 지나치게 치중해 HOW는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혹은 가장 인정받는) 방법을 택한다. 즉, 무엇을 하느냐를 정하면 어떻게 하는지는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것이다. (메뉴얼 대로 하면 되니)
만약 1부터 10이 있다면 3과 7의 차이는 엄청나게 커보인다. 3은 자기보다 높은 숫자들이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비교한다. 그러나 만약 무한대라면? 음양으로 무한대로 펼쳐진 숫자라면 이 비교가 의미가 없다. 무한대에서 3과 7의 차이는 아주 작은 점보다 작다. 무한대에선 높고 낮음은 무의미하고, 그저 “나는 2와 4 사이에 있다.” 정도만 유의미하다. 나보다 낮은 숫자는 무한대로 펼쳐져 있고, 나보다 높은 숫자도 마찬가지다. 무한은 0과 같다. 무한은 비교할 수 없음을 뜻하고 더 이상 비교는 무의미하다. 우주가 무한하다면 측정할 수 없고, 애초에 측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몰랐겠지만 정해진 삶의 방식은 없다. 정말로 없다. 치킨에 맥주를 먹든, 콜라를 먹든, 우유를 먹든 상관없다. 치킨을 먹는 방법은 무한대다. 나아가 치킨을 안 먹어도 상관없다. 우리에겐 무한대의 WHAT과 무한대의 HOW가 있다. 무한대의 삶이 있다. 무한대를 떠올려라. 너는 이걸 하고, 나는 이걸하고의 차이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가?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인 내가 이런 믿음을 갖기란 쉽지않다. 어릴 때부터 딱 하나의 정해진 정답만을 찾으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수학도 사실 답을 도출하는 무수한 방법이 있는데, 나는 그저 하나의 공식만 정답처럼 외워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식이긴 하지만 나름 확장되고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했다.
무한대를 떠올려보자. 지금 내가 불안해 하는 이 작은 차이가 얼마나 의미없는가. 내가 믿고 있는 “정답”이 얼마나 일시적이고 편협한가. 마음이 엄청나게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되겠지.” 아무거나 해도 괜찮고,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 나는 2와 4 사이에 있는 3일 뿐이지 2보단 높고 4보단 낮은 3이 아니다. 3에겐 3의 방식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