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에 관한 고찰
나의 큰 줄기 목표 중 하나, 내가 살고 싶은 인생,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동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동기를 주었던 “어린왕자”를 읽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고, 글로 쓸 수 있지?’ 나의 관심은 소설보단 소설 밖 작가에게 있었다.
앙투완 드 생택쥐베리. 그는 해군 사관학교에 지원하였으나 1차 필기에 불합격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알쏭달쏭 하다. 그도 해사에 지원했다니.) 그 후 그는 파리에 있는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 건축학과에 비학위과정 청강생으로 입학했으나 학업보다는 대학가 카페와 센 강변의 한 호텔방을 오가며 백수 생활을 즐겼다. 1921년 4월 프랑스 육군 이등병으로 징집되어 프랑스 육군 제2항공연대 항공정비병으로 근무했고, 1922년 4월 파리에 있는 육군 사관후보생 EOS 과정에 입교, 예비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항공기 추락사고로 두개골이 골절되어 소위로 의병 전역했다. 1924년 트럭회사의 자동차판매 대리점 영업사원으로 이직했으나 1년 6개월간 단지 1대의 트럭을 판매하고 일이 힘들어서 사직했다. 이후 몇몇 산문과 시를 집필하기 시작, 1926년 첫 저서인 <비행사>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2차 대전이 한참이던 1943년 대망의 <어린왕자>를 집필하게 된다.
그는 전세계가 암흑에 휩싸이던 1940년대에 유럽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카뮈가 이방인을 집필한 1942년과 1년 차이다.) 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소설을 써냈다. 그는 무엇이 달랐을까? 나는 그의 동심에 감화되었고, 나 역시 그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다. 어린아이는 진실된 삶을 산다. 그들은 느끼고 싶은 걸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한다. 꾸밈이 없고 진솔하다. 어린아이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이 새롭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함은 창조의 크나큰 적이다. 성인이 되면 우리는 주위것들에 익숙해진다. 성장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와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생존을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의도적으로 제거하며, 만물을 당연하게 여기고 나아가 단순화한다.
인간에겐 부주의 맹이란 현상이 있다. 한가지에 집중하면 그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뇌가 차단하는 것이다. 1999년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을 진행한다. 그들은 참가자에게 농구연습을 하는 영상을 보여주고는 공을 몇 번 주고 받는지 세어보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정확하게 숫자를 맞추고 자랑스러워 했지만 실험 목적은 그게 아니였다. 영상에는 고릴라 탈을 쓴 사람이 나와 춤을 춘다. 놀랍게도 이를 발견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농구와 전혀 관련없는 고릴라가 나왔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릴라를 본 적도 없는 것이다.
인간은 부주의 맹을 통해 생존확률을 높혔다. 이는 명백한 진화의 산물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낱낱이 인식하고 주의하기엔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따라서 인간은 세상을 “용도와 목적”이라는 필터를 씌워서 관찰한다. 사물의 본질인 물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의 용도와 나의 목적을 투영시켜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은 무의식적으로 배제한다. 따라서 세상은 아주 극단적으로 단순화된다.
즉, 사람들은 어른이 되고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태어난 후에 뇌가 성장한다.) 부주의맹을 익혀가면서 요소의 특징, 독창성, 개별성이 아니라 전체의 공통점, 패턴, 용도 등에 집중하여 전체주의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이는 주의에 쓰이는 에너지를 절약하여 다른 생산적인 활동에 몰두하게 해주었지만, 그 덕에 어른들은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실명했고, 부분이 모여 새로운 형상이 되는 게슈탈트와 그 반대인 미시적인 시각으로 물자체를 인지하는 능력을 잃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어른과 아이의 현상은 극명한 차이가 두드러졌다. 성인에게 세상은 수단에 입각한 뻔한 대상이며,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니 냉소적이며 염세적이다. 용도와 목적의 세상에선 실용성이 중요한 가치이며, 결과적으로 실용성 편향에 갇힌다. 호기심보단 두려움, 도전보단 안정을 추구하고, 그 결과 믿을 수 없는 것들 (닛이라고 일컬었던)을 믿는 능력, 즉 상상력은 퇴화되고 현실성, 합리성이 중추가 된다. 뇌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많은 기제들을 형성했고 확증편향과 경로의존성이 그 예시이다. 나아가 뇌가 자라나고 자아가 형성됨에 따라 나와 남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나에 대한 분명한 자각으로 나 이외에 것은 배척하게 된다.
진실됨, 어린아이 같은 동심이란 나의 본성에 입 맞추는 것이며, 어른이 되어 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것이다. 또한 세상을 다차원적이고 아름다운 탐험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게슈탈트와 물자체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용도와 목적의 필터를 벗고 두려움이 아닌 용기로 삶을 마주하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무릎에 아이를 앉히고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파블로 피카소는 5살 때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선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위인들이 어린아이의 이런 동심을 찬양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함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