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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거나, 달빛이거나

작성 2022.12.07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어제 나는 경채 부모님이 연출하고 출연하시는 연극을 보러갔다. 제목은 [달이거나, 달빛이거나]이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충돌하던 조선 중기 정조시대 때 저잣거리에서 이야기를 전하던 전기수에 대한 이야기다. 사헌부의 대사헌은 정파싸움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효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민중에게 퍼트려 백성들을 계몽시키려 한다. 그는 당대 유명한 전기수를 고용하여 “심청전”을 각색하게 한 후 임금 앞에서 이야기를 펼치도록 한다.

대사헌은 규율, 전통, 절제, 사실성에 입각한 고전주의자이다. 그는 허구적인 이야기를 배제한 채 사실에 입각하여 인의예지를 고무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지시한다. 하지만 전기수는 그의 지시에 따라 심청전을 각색하면서 인간적인 것, 본능, 낭만과 감성을 따라가는 낭만주의자로의 본능을 알게되고, 사실이나 목적성보단 청중을 감동시키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대사헌은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그에게 자신의 입맛대로 이야기를 쓸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임금 앞에선 전기수는 대사헌을 속여 자기가 원하는 소설을 말하게 되고, 이에 분노한 대사헌은 그의 눈을 뽑아버린다.

“이를테면 대사헌이 눈에 보이는 실체 그대로 저기 저 중천의 달을 또렷이 얘기하고 싶었던 거라면 난 달의 수백개 환상과 꿈으로 그 얘길 하고 싶어 했다 할까? 달이 있으면 달빛도 함께 서리는 것이거늘 달무리가 가진 아름다움은 젖혀두고 어찌 보이는 그대로만 달을 얘기할 수 있겠나.”

작 중 전기수의 대사다. 그는 표현 방식의 다양성을 이야기한다. 저 둥그런 행성 “달” 뿐만 아니라 해의 비쳐진 달빛도, 강물에 비친 달의 형상도, 달을 표현하는 시구절도, 모두 달을 말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이 극의 제목은 [달이거나, 달빛이거나]이다. 전통을 시대에 뒤쳐진 고리타분한 것으로만 보고, 낭만과 꿈을 중요시하는 전기수는 항상 옳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표현을 억압하는 표현의 자유는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달이다, 달빛이다”의 문제는 그 둘 모두 달 혹은 달빛만 진짜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작품 내에서 전기수는 대사헌의 규제와 억압을 받는다. 대사헌의 행위는 분명이 그릇됐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있겠는가. 그에게 이뤄야 할 목적이 있고, 그의 절제된 미학, 탐미주의에도 의미가 있다.

혁신과 낭만은 언제나 옳고, 전통과 규율은 버려 없어져도 되는 것으로 치부되어도 되는 것일까? 다양성 추구의 맹점은 “내가 인정하는 다양성만”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난 중립론이나, 어정쩡한 조화를 선호하진 않는다. 당연히 나는 전기수와 같은 입장이다. 낭만과 감정, 가장 인간적인 본성에 대하여. 그의 말처럼 달빛도 달이다. 나는 다시 생각한다. “본인이 원한는 것을 하는 게 예술이다.” 대사헌 역시 예술가이며, 전기수도 마땅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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