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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작성 2022.11.08분류 글주제 예술과 철학

살불살조라는 말을 알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깨달음은 옛 선인들의 멋들어진 자서전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헤르만 헤세도 싯다르타를 통해 똑같은 내용을 전한다. “진리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 문장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는 새롭게 느낄 것이다. 놀랍다. “진리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문장도 아무것도 가르칠 수 없다. 그저 “아 이런 것들은 가르친다고 전해지는 게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들을 여러번 접했을 때 배울 수 있다. 인간은 참으로 아둔하고 멍청하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안다고 착각하고, 한 번 배우고선 완벽히 익혔다고 오해한다. 그렇기에 100년은 너무나 짧다. 정말 5억년은 살아야 뭔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일까.

싯다르타는 숲속에서 붓다인 고타마를 만난다. 그리고 그와 대화한다. 붓다는 숲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찾은 지혜를 건낸다. 사람들은 감복하여 그의 설교를 경청한다. 싯다르타는 (내 해석으론) 그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한다.

나는 생각했다. 붓다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 붓다가 된 게 아니다. 그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피나는 수련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가르침을 받고 붓다가 되고자 하는 것인가? 그들은 시마나가 되어 붓다의 가르침 속에서 평생을 바친다. 소설 초기에 배운 것들을 행하는 브라만은 대체 어디있느냐고 싯다르타가 질문을 던진다. 마찬가지로 그 많은 붓다의 제자들 중 실제로 붓다가 된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다.

가르침은 과장됐다. 사람들은 인간은 훌륭한 스승에게 비법을 전수받아야 하며 그게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자, 성장하는 지름길이라 믿는다. 물론 어느 부분에선 그럴지도 모르겠다. 과학이나, 기술 같은 경우에는.. 하지만 늘 말하지만 과학적 사고와 방법론을 인문학에 적용하려 하니 문제다. 가르침은 미신이다. 우리는 가르침으로 배울 수 없다. 그건 그냥 알게 된 것일 뿐이다. (알게 된 것이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배운 게 아니지 않은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가르침은 실제론 큰 효과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 미신을 믿고, 과장한다. 그리고 치열한 자리 싸움으로 새벽같이 앞자리를 차지해 붓다의 설교를 듣는다. 그리고 하나 배웠음에 감동하고 흐믓해한다.

그들도 알게 된 것으로 유명인사가 되고 책을 쓴다. 그것들은 전수되어 교과서가 된다. 하지만 그것들을 실제로 행하는 이는 전무후무한 세상이 되고 만다. 그래 사실과 현상은 다르다. 그런 현상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실제 가치보단 사람들이 믿는 가치가 중요한 주식처럼 인생도 그럴 지 모르겠다. 모든 게 신용이며, 수요와 공급이니까. 인간은 허상을 좇는 존재들이니까.

싯다르타는 뱃사공이 되고 붓다의 제자들은 그 위신으로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그게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가르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뭘 위한 가르침인가. 무질서도가 늘 증가하는 것처럼, 세상은 이토록 어지럽고 지저분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뭔가를 바꾸겠다는 외침, 붓다의 지혜는 이렇게 오도되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든다. 모두가 싯다르타 같았다면 어땠을까? 붓다는 미래를 몰랐기에 강연대에 올랐을 것이다.

문득 이러한 것들에 대해 하루종일 토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잔 밑에 모여 세상을 조롱하며, 우월감에 젖고 싶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쩌면 마음 맞는 친구들과의 관계, 생각이 확장되고 자유롭게 펼쳐지는 방안의 온도가 그리울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들은 남들눈엔 허무주의고 염세주의이며, 타인들의 동정심이나 우월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들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겠지. “요즘 많이 힘들었구나..” 혹은 “그런 생각을 도대체 왜 해.”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짐을 혼자 짊어져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열등감도 우월감도 아니다. 선민의식은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는 알고 누군가는 모른다는 사실일 뿐이다. 그는 우리가 넛지나 조그만 심리적 요인에 쉽게 조작되고, 지배받으며, 통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콜라에 들어간 설탕이 우리 몸을 죽인다는 것을 알든 모르든 설탕은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단지 모르면 그냥 맛있게 마시고, 알면 힘겹게 콜라를 마시든가, 콜라를 마시는 즐거움을 포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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