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 전환비용, 모노태스킹
“인간적인 것이 가장 훌륭하다. 인간에겐 다른 것들에겐 없는 특별함이 있고 인간다움이 우월한 것이다.”
인간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믿음이다. 극단적인 표현이라 부정하고 싶을 수 있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인본주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믿음 중 하나다. 인간 사회는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당연히 그 인간다움이 우수한 가치다. 이건 절대 그릇되거나 악한 믿음이 아니다. 우리가 개, 돼지, 새가 아니라 인간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만약 조류였다면 조본주의가 팽배했을 것이다.
저 문장이 사실이건 아니건 우리 사회가 이러한 믿음으로 움직인 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낯선 것을 회피하고, 익숙한 것을 우선시 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우리에게 인간적이지 않음은 낯선 것, 인간적인 것은 익숙한 것이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두 AI가 만드는 컨텐츠들이 생겨나고 있다. 예술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 믿었지만 정작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은 인간이 만든 컨텐츠보다 AI가 만든 컨텐츠를 더 선호했다. AI는 인간이라면 수 일이 걸린 작업을 몇 시간, 몇 분 만에 해결했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여 그 수요를 충족시켜줬다.
AI의 작업방식은 아주 명료하다. 목표를 도달하기 위해선 무슨 작업이 필요하고, 작업을 완수하기 위해선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해당 도구를 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석하고 정해진 절차대로 군더더기 없이 진행한다. AI는 인간처럼 잡담을 하지도, 퇴근 후 뭐를 먹을 지 생각하지도,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갈 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생각만 한다.
요즘 나의 큰 화두는 전환비용이다. 동시에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멀티태스킹은 인간적인 것이다. 자극에 취약하고, 집중력이 쉽게 분산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인간이 가져야했던 능력이다. 언제 어디서든 포식자가 나타날 것을 대비하고, 타 세력과의 충돌을 견제하며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능에 미디어의 홍수라는 환경이 더해져 도저히 하나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이 멀티태스킹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주 인간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할 수 있고, 원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멀티태스킹의 치명적인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고, 가끔 인지했어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하지만 어느순간 깨달았다. 내가 속도감있게 진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멀티태스킹이라는 것을. 동시에 여러 작업을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분산되고 에너지를 하나에 모을 수가 없었다. 멀티태스킹에서 발생하는 전환비용이 매일매일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게 만든다. 느린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말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직관적으로는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느껴진다. 이렇게 글로 설명하면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하자.”라는 말이 정답처럼 느껴지지만 실생활에서 이런 문제에 닥치면 한 번에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많은 상황에서 하나를 끝내고 다음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우리를 정체하게 만드는 수많은 본능처럼 멀티태스킹도 그러하다. 이를테면 편도체는 우리에게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시도하는 것을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이런 공포를 못 느끼는 인류는 모두 도태됐기 때문에 우리가 편도체를 통해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인류는 모두 도태됐을 것이다.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는 것을 모노테스킹이라 정의하겠다.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는 모노태스킹은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다.” 모노태스킹을 해도 복합적으로 사고하고, 융합형 사고가 가능하다. 오히려 멀티태스킹을 했을 때 더 깊은 사고 불가능하다. 전환비용이 우리의 집중력과 효율성, 체력을 앗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