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차이가 생기는가? (생산성, 질문, 독립성)
어떻게 차이가 생기는가?
앞서 나는 책을 1000권 읽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1년에 책을 500권 읽는 사람, 200권 읽는 사람, 평생 책을 만 권 읽은 사람. 다독자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성공했는가? 그들이 인생의 참된 지혜를 깨닫고 실천했는가? 범인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엄청난 천재성을 보여주었는가?를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책을 10권 읽은 사람과 1000권 읽은 사람의 사고의 깊이에 큰 차이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지 의문이었다. 나는 고민 끝에 차별점은 생산성에 있음을 정의했다. 생산성이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인풋에서 생산해내는 아웃풋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 생각한다. 같은 그림을 보아도 철학에 철학을 더해 풍미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과 별 특징없는 무미건조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바로 생산성이다. 그렇기에 같은 기간 순항을 떠났지만 느끼고 생각하는 정도가 달랐다고 생각한다. 생산성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은 필수적이지 않다. 그들은 개똥을 보고도 철학한다.
왜 차이가 생기는가?
생산성 개념은 어떻게 차이를 만드는 가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왜가 해결이 안 되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느냐말이다. 도대체 생산성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질문을 돌고 돌아 현상에서 생겨났다. 자기개발에 관심이 생겨 정보를 찾고, 책을 읽었다. 고전을 읽을 때부터 느꼈지만 현명한 지혜들이란 대개 비슷한 모양새다. 자기개발에 관해서도 그랬다. 모두 표현만 달리할 뿐 본질은 유사했다.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자 이제 의문점은 이것이다.
재료 - 레시피 - 기술이라는 개념이 있다. 레시피와 재료는 시중에 널렸다. 그러니 누구나 약간의 기술만 첨가하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자기개발에 관해서도 그렇다. 방법이나 개념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책에서 이야기한다. (그것도 모두 같은 내용을!!)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 자기개발서엔 성공하는 방법이 1부터 10까지 다 나와있다. 도대체 사람들 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알지만 실행하지 못해서
알고 실행도 했지만 꾸준하지 못해서
이 세가지 경우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해는 쉽다고 생각한다. 다독 다감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다독 다감해서 이해했다면 누구나 실행할 수 있다. 다독 다감하고 실행했다면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자기개발서들은 친절하게도 사람들이 어째서 실패하는 지 예측하고 대응방안까지 다 적어놨다. 믿음이 부족해서 안 된 거면 의심하지 말고 진정으로 믿는 게 핵심이라고 말한다. 한 두번 실패로 좌절하면 포기하지말고 끝까지 하면 결국 성공한다고 적어놨다. 말 그대로 그 안에 모든 게 있다. 1800년대에 쓴 나폴레온 힐의 자기개발서가 2022년의 그것과 토씨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성공의 방법은 애초에 시대를 막론하고 정론이 있다는 얘기다.
정리하자면 원론적으로 들어가 이해하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하고, 꾸준하지 못하는 “바로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타이탄의 70프로가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명상을 하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마음속에 내린 그 답 “안 믿어서, 귀찮아해서, 학습이 제대로 안 되어서,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서, 바빠서” 등등 너머에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나는 123번 이 모두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이해하고 실행하고 꾸준하지는 못 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며 발전하고, 누군가는 정체한다. 그 이유는 1번 과정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이해를 못 했으니 발전이 없다. → 그렇다면 왜 이해를 못하냐? →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냐? → 사고가 표면에서 정체되었기 떄문이다. → 왜? →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없기 때문이다. → 왜? → 내적 성숙이 안 됐기 때문이다. → 왜? → 자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떄문이다. → 왜? →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왜? → 궁금하지 않기 떄문이다. → 왜? → 심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왜? → 늘 무언가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다. → 왜? → 외부자극에서 독립적인 시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끊임없이 문제점을 발견할 것이고, 이유를 물을 것이고, 방법을 찾아 해맬 것이다. 내가 질문하면 어떤 이들은 그런 게 왜 궁금하냐고 반문한다. 나는 다시 묻고 싶다. “그게 왜 안 궁금해?” 질문 습관이 없기에 질문하지 않는 것이다. 질문 습관은 본능이다. 어린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모든 걸 궁금해한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질문 본능은 부모와 공교육에 의해 제지된다. 질문하고 싶은 욕구보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본능이 상위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사람들에겐 질문 본능이 그대로 유지된다. 혼자서는 그다지 할 게 없다. 생각하고 질문하고 또 생각할 뿐이다. 내가 질문을 많이 하는 것도 단지 어릴 때 할 게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혼자였기에 자주 공상에 잠겼고, 멍을 때리고, 산책을 나갔다. 할 수 있는 건 관찰하고 질문하고 생각하기 뿐이었다. 어린 아이들에게 독립적인 시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집에선 부모와 하루 종일 같이 있고, 학교에 가 아이들과 어울리고, 학원에서 공부하다 다시 집으로 오는 아이들에겐 독립적인 시간도 공간도 없다. 물론 현명한 부모라면 이런 본능을 가꾸고 키워 더 훌륭한 아이를 만들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부모는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내 목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성공과 발전이 앞선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순히 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는 식으로 귀결된다면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어진다. 난 노력하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믿고싶다. 원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바꾸고 싶진 않다. 단지 난 사람들에게 넛지를 주고 싶다. 세상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하기로 한 사람 2) 안 하기로 한 사람 3) 선택하지 않은 사람 내 타겟은 1번과 3번이다. 간혹 2번 사람도 내 영향으로 생각을 바꾸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