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rt Rabbit
이현승의 개인 홈페이지[자기소개]

클리셰는 성공한다.

작성 2022.08.01분류 글주제 사회와 시장

다시 탑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영화를 다 본 후 나의 감상평은 “클리셰는 성공한다.”이다. 탑건은 말그대로 클리셰 비빔밥이었다. 맛있는 재료들을 다 섞어서 비빔밥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비빔밥을 한 술 뜨고는 박수쳤다. 사람들에겐 음식의 모양이 어떻고, 플레이팅이 어떻고, 레스토랑의 인테리어와 분위기, 웨이터의 서비스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푸아그라보다 라면을 택한다. 짜고 맵고 자극적인 라면.

탑건은 부모 세대를 위한 완벽한 서비스 영화였다. 엄마는 20대 때 탑건 1편을 봤다고 했다. 탑건 2에는 탑건 1을 안 보고는 이해할 수 없는 장면과 대사들이 많았다.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젊은 관객들은 인터넷으로 찾아보거나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디테일을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냥 불사신 톰 크루즈가 말 안듣고 방황하다가 절체절명의 순간 기지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는 감동 스토리다.

나는 탑건을 굉장히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를 동시에 잡았다. 부모세대의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가 원하는 자극적인 요소들도 골고루 갖추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장면을 말그대로 그냥 쏟아부었다.

부모세대

  • 뜬금없이 바에 사람들이 몰려와 인도 영화처럼 피아노를 치고 춤추면서 노래하기
  • 1편 관련된 수십가지 레퍼런스를 어떠한 맥락도 없이 나열하기
  • 1편의 주요 등장인물인 ‘아이스맨’이 태평양 사령관이 된 미래를 보여주며 그들의 재회에서 감동을 느끼게 한 후 바로 죽여버려서 눈물 쏙 빼기
  • 60대가 넘은 톰 크루즈가 아직도 가죽자켓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며 아리따운 중년 여성과 잠자리 후 창문으로 도망가는 장면 등등

젊은 세대

  • 난데없이 석양이 지는 해변에서 웃통까고 슬로우 모션으로 럭비하는 몸짱 오빠들
  • 위기에 위기에 위기. 그리고 기적에 기적에 기적을 더해 해결하는 카타르시스
  •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특수효과, 빠른 전개의 전투씬

PC

  • 남자 없이도 잘 사는 ‘진취적인’ 여성인 페기는 요트 모는 법을 매버릭에게 알려준다
  • 매버릭은 사건이 끝난 후 페기를 찾지만 그녀는 행방이 묘연! 얼마 뒤 비행기를 고치던 톰 크루즈는 밖을 바라보고 그곳에 서있는 건 멋들어진 올드 스포츠카와 페기!!!
    • 남자는 홀연히 떠났다 말없이 돌아오고 여자는 그런 남자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전형적인 액션영화 클리셰를 대놓고 남녀만 그대로 바꾼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 당연히 최종 선발에는 한 명 뿐인 여자 파일럿이
    • 그 여자 처음 나올 때부터 선발될 것이란 걸 알았다.

탑건의 감독은 천재다. 이 모든 요소들을 무성의하게 툭 던져놨다. 관객이 알아서 비벼먹어야 한다. 당연히 영화 제작은 미 해군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았을 것이다. 더욱이 이 영화는 고증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3성 장군이 단 한명의 보좌관도 없이 혼자 다닌다. 사람들은 그딴 건 신경도 안쓴다. 심지어 공격하는 국가는 누가봐도 러시아다. 저런 설원 지형에 5세대 전투기를 가졌는데 미국이 공격할 국가는 러시아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런 설명은 전혀 없다.

1970년대 제작된 F-14로 5세대 전투기를 두 대나 잡는다는 게 말이 되나. 실제라면 러시아 전투기안에 목각인형을 넣어놨어도 이겼을 것이다. 같은 5세대 전투기인 F22는 가상전투에서 단 두대로 241대의 적기를 격추시켰다. 관객은 F 22의 성능이 다른 전투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 미 공군은 더이상 더 높은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심없다. 난데없이 공격당한 러시아가 추락한 톰 크루즈를 찾으려 보낸 항공기가 헬기 한 대이며, 추락한 전투기 조종사를 생포하지 않고 보자마자 쏴 죽이려 하는 게 말도 안된다는 건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보기 전 오전에 영화감독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렇게 똑똑하고 훌륭한 국내 영화감독들이 왜 그런 거지같은 영화를 양산하지? 분명 그들이 예술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똑똑하니까 그런 영화들을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 지 알고 그것을 만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클리셰를 욕하면서도 없으면 허전해 한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음식이 짜면 짜다고 표현하지만 싱거우면 맛없다고 한다고 이연복 셰프는 말했다.

싱거운 비빔밥보단 조미료 듬뿍 넣어서 짠 비빔밥이 훨씬 낫다.


A Smart Rabbit|GitHub|LinkedIn|RSS